나의 침묵은 왕의 유일한 구원이었다

GoodNovel new 완결

내명부 전체에 난데없이 뭔가에 씌었는지 서로 마음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들 머릿속으로는 미친 듯이 서로를 물어뜯으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유지해야 했다. 그중에 나 한 명의 마음의 소리만 들리지 않았기에, 다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무도 듣지 못했다. 유정연은 심리전으로 나를 물러서게 만들려고 했지만 아마 알지 못했을 것이었다. 본인 머릿속에 든 그 더러운 속셈을 나와 전하가 진작에 낱낱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챕터 (1)

第1章

내명부 전체에 난데없이 뭔가에 씌었는지 서로 마음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들 머릿속으로는 미친 듯이 서로를 물어뜯으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유지해야 했다. 그중에 나 한 명의 마음의 소리만 들리지 않았기에, 다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무도 듣지 못했다. 유정연은 심리전으로 나를 물러서게 만들려고 했지만 아마 알지 못했을 것이었다. 본인 머릿속에 든 그 더러운 속셈을 나와 전하가 진작에 낱낱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제1화 “숙원, 오늘 밤 전하께서 내 처소를 낙점하셨습니다. 그러니 굳이 여기서 눈에 거슬리게 굴 작정이라면 무릎을 꿇고 차나 올리세요.” 평상에 고고하게 앉은 유정연은 봉숭아 물을 들인 손가락으로 손수건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도발의 기색이 가득 드러난 그 얼굴을 보면서 내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귓가에는 지독히도 날카로운 여인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죽일 년! 생긴 건 여우같이 생겨서. 조금 있다가 펄펄 끓는 찻물을 끼얹어서 저 낯짝을 문드러지게 만들 거야! 그러고도 전하를 홀릴 수 있나 보자!’ 나는 잠시 얼떨떨해져서 유정연을 보았다. 입만 바들바들 떨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곧이어 문밖에서 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상 전하 납시오!” 이 나라의 왕 이준훤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안색은 호수의 물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온몸에서 위엄이 뿜어져 나왔다. “신첩, 전하를 뵙습니다.” 유정연은 곧바로 비단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표정을 바꾸더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여우처럼 왕을 맞으러 나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준훤의 머리 위로 지극히 사나운 사내의 속마음이 떠올랐다. ‘하 지겹기 그지없네! 날마다 문안이라니. 하루 종일 상소를 결재해서 허리가 끊어질 지경인데...’ ‘빈은 오늘 왜 이딴 청개구리 같은 걸 걸치고 나온 거야? 눈이 다 아프네.’ 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미쳤어. 궁 안이 아주 단단히 미쳐 돌아가네.’ 나는 유정연의 마음의 소리뿐만이 아니라 왕의 마음의 소리까지 알 수 있었다. “전하, 이제야 오셨습니까?” 유정연은 이준훤의 곤룡포 자락을 잡고 아양을 떨었다. “숙원이 예의를 모르기에 신첩이 마침 가르치던 참이었습니다.” 허나 유정연의 속에서는 악에 받친 비명이 터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대머리 놈! 아버지의 병권만 아니었으면 내가 네놈 수발을 들겠어? 머리숱은 내관보다도 없는 주제에 날마다 무슨 위엄을 그리도 부리는 건지...’ 탁하는 소리와 함께 막 찻잔을 들어 올리던 이준훤의 손이 세차게 떨리더니 찻물이 곤룡포에 쏟아졌다. 그 준수한 얼굴이 눈에 보이는 속도로 시커멓게 변하더니 관자놀이에는 핏대까지 세웠다. 나는 이준훤의 속에서 거세게 몰아치는 파문을 또렷하게 들었다. ‘누구지? 누가 과인더러 대머리에 내관보다 못하다고 욕을 한 거지? 당장 썩 나오지 못할까! 내 머리숱은 이렇게 빽빽하거늘!’ 사냥감을 노리는 매처럼 온 방 안을 훑던 이준훤의 눈길이 마지막에 유정연의 얼굴에 못 박히듯 멈췄다. 지금 이 순간 온 방에서 속으로 미친 듯이 욕을 쏟아 내고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라고 생각했다. ‘보기는 뭘 보는 거야. 아무리 봐 봤자 네놈은 대머리야!’ ‘오늘 밤에는 내 몸에 손댈 생각도 마. 그 낯짝만 봐도 밥맛이 떨어져.’ ‘오늘 밤에는 이런저런 보양식이나 배가 터지게 가득 먹여 주마!’ 이준훤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돌려 구석에 서 있던 내게 눈길을 던졌다. ‘숙원은 어찌하여 한마디도 하지 않는 거지? 대관절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거야? 어찌하여 숙원의 생각은 들리지 않는 거야!’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이준훤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느긋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선 나는 이준훤 앞에 곧바로 무릎을 꿇고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전하, 신첩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사실 신첩은 방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빈마마의 저 옷이 비록 청개구리를 닮았으나, 마마께서 속으로 전하를 대머리에 명 짧은 귀신이라 욕하시는 것에 비하면 그게 더 체면이 서는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침전 전체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꿰뚫자, 유정연은 하마터면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숙원! 대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겁니까! 내가 언제 전하를 대머리라 욕하였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멘탈은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하늘이시여! 심난설 저 천한 것이 어찌 제 마음을 읽을 수 있단 말입니까!’ ‘숙원, 저게 요술이라도 부리는 건가? 끝났어, 다 끝났어. 내 마음이 전부 드러나 버렸으니...’ 이준훤은 벌떡 몸을 일으켜 유정연을 노려보더니,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싸늘하게 웃었다. “그렇구나. 빈은 입으로는 과인의 만수무강을 빌면서, 속으로는 보양식이나 가득 먹여서 배가 터지게 만들 생각이었던 겁니까?” “전하! 신첩은 억울합니다! 신첩은 그런 적이 없습니다!” 유정연이 털썩 무릎을 꿇은 유정연은 놀란 나머지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이준훤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곤룡포 자락을 휘둘렀다. “게 아무도 없느냐! 빈은 빈으로서의 본분을 잊었으니 숙의로 강등하고 근신케 하라!” 유정연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이준훤이 아량을 베풀기만 바랐다. 왕의 명을 받든 내관들이 유정연을 마치 죽은 개를 끌고가듯 끌어냈다. 방 안에는 나와 왕 둘만 남았다. 이준훤은 거침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내 앞으로 다가와서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방 안은 조용하기 그지없었지만, 정작 내 귀에는 온통 시끄러운 소리들이 가득했다. ‘이상해, 참으로 이상하단 말이지. 어찌하여 온 궁에 있는 사람들의 속마음은 다 들리는데 유독 숙원의 속마음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지? 진짜 요녀인 건가?’ 고개를 들어 이 젊은 왕의 의심 가득한 눈길을 마주한 나는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전하, 그만 짐작하시옵소서.” 나는 몸을 일으키며 전하를 향해 눈을 깜빡였다. “신첩은 속으로 전하를 감히 욕하지 않았습니다. 신첩은 그저, 전하의 머리숱이 참으로 빽빽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 말에 이준훤의 얼굴이 한순간에 가마솥 밑바닥처럼 시커멓게 변했다. 제2화 “숙원, 거기 서세요.” 화원의 좁은 길을 막 벗어나자 맞은편에서 최옥선이 걸어오고 있었다. 최옥선은 궁녀 둘의 조심스러운 부축을 받고 있었다. 새빨간 옷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가채와 옷에 주렁주렁 달린 장신구들은 최옥선의 몸짓을 따라 찰랑찰랑 흔들렸다. 최옥선 곧 멸시가 가득한 눈길로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연신 코웃음을 쳤다. 허나 그 오만한 얼굴 아래에 숨겨져 있던 추한 마음들이 내 귀에 속속들이 들려왔다. 최옥선은 속으로 더할 나위 없이 득의양양해 있었다. ‘하하하! 숙원, 저 천한 것이 드디어 내 손아귀에 들어왔구나! 그 멍청한 것이 네년의 말 한마디에 숙의로 강등되었다지? 나는 그런 머리가 빈 것들과는 달라.’ ‘오늘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가루를 탄 이 찻물로 본인의 귀를 긁고 뺨을 할퀴도록 해서 얼굴을 들지 못하게 만들어 주겠어!’ 나는 무표정하게 최옥선을 바라보았지만 마음속은 파문 하나 없이 고요했다. ‘또 속마음으로 자신의 범행 계획을 생중계하는 자가 나타났네.’ 그런 생각을 한 나는 건성으로 몸을 굽히고 인사를 했다. “소첩, 귀인자가를 뵙습니다.” “됐습니다.” 최옥선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곁의 궁녀에게 눈짓을 보냈다. “보아하니 오늘 숙원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여서, 일부러 수라간에 일러 좋은 차를 준비하게 하였습니다. 한번 드셔 보시겠습니까?” 궁녀가 곧바로 소반을 받쳐 들고 앞으로 나왔다. 그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백옥 찻잔이 놓여 있었다. 최옥선은 꽤 마음이 넓은 보살처럼 자애롭고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미친 듯이 비웃기 시작했다. ‘마셔라! 어서 받아 마셔! 이건 내가 어렵사리 궁 밖에서 구해 온 독한 약이야. 목구멍에 닿기만 하면 온몸에 개미 수천 마리가 기어다니는 것 같을 거야!’ ‘주상께서 네가 원숭이처럼 바닥을 구르는 꼴을 보시면 평생 너를 역겨워하시겠지!’ 내가 이 찻물을 어떻게 저 입에 도로 부어 넣을까 궁리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모퉁이에서 곤룡포 자락이 언뜻 스쳤다. “신첩, 전하를 뵙습니다.” 최옥선은 이준훤을 보자마자 눈빛을 반짝이더니, 몸을 살랑살랑 흔들며 그 품에 안기려 들었다. 그러나 이준훤이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그 속마음이 온 마당에 울려 퍼졌다. ‘큰일이다! 어찌하여 또 귀인과 마주친단 말이지? 오늘 일부러 서쪽 길로 돌아왔거늘 어찌 또 이리 마주친단 말이야!’ ‘입만 열었을 뿐인데도 분 냄새가 확 풍겨서 머리가 지끈지끈하군!’ 이준훤은 표정이 굳어진 채 손을 들었다. “일어나세요.” “전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최옥선이 그 틈에 이준훤의 팔을 끼고 간드러지게 찻잔을 가리켰다. “신첩이 보기에 숙원이 요즘 전하를 모시느라 고생이 많은 듯 보였습니다. 일부러 차 한잔을 내렸는데, 좀처럼 받지 않습니다. 이는 신첩을 업신여기는 것이 아닙니까?” 최옥선은 겉으로 몹시 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전하, 어서 소첩 대신 숙원에게 마시라고 명을 내리세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추한 꼴을 보이면...’ ‘그때 전하에게 바람을 좀 넣어서 숙원 품계마저 박탈당하게 만들 것이야!’ 이준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묘한 눈빛으로 그저 최옥선을 한 번 보았다. 이때, 이준훤 역시 최옥선의 악독한 속셈을 낱낱이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준훤의 속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악독한 것! 대낮에 과인이 보는 앞에서 감히 약을 타서 마시게 하려 하다니!’ ‘날 장님으로 아는 거야? 귀머거리로 아는 건가? 가만, 숙원은 왜 아직도 반격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지?’ ‘숙원은 대체 저 차에 약이 든 줄 아는 건가, 모르는 건가!’ ‘마음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답답해 죽을 노릇이군!’ 알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이준훤의 꼴을 본 나는 살며시 웃으면서 한 걸음 나아갔다. 곧바로 궁녀의 손에서 그 찻잔을 받아서 들었다. “귀인자가께서는 참으로 어질고 정숙하십니다.” 점점 달아오르는 최옥선의 눈길 속에서, 나는 찻잔을 받쳐 든 채 갑자기 고개를 돌려 이준훤을 바라보았다. “전하, 신첩이 듣기로 귀인자가께서 요사이 대비마마를 위해 불경을 베껴 쓰시느라, 두 눈이 벌게지도록 밤을 새우셨다고 합니다.” “또한 몸에 그리 좋은 차라고 하는데 신첩이 어찌 감히 혼자 누릴 수 있겠습니까? 신첩은 이 차를 귀인자가께 올리고 차를 드실 때 시중이나 들까 합니다.” 그 말에 최옥선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 “나는 목이 마르지 않습니다! 숙원, 이는 내가 숙원에게 내린 겁니다. 본인의 분수를 알고 행동하세요!” 최옥선은 자신이 그 차를 마시게 될 뻔하자 속으로 오만가지 욕설을 퍼부었다. ‘망할 것! 저 천한 것이 나더러 이딴 차를 마시라고 하는 거야?’ ‘이걸 마시면 사람들 앞에서 귀를 긁고 뺨을 할퀴며 원숭이처럼 구르는 자가 내가 되잖아! 전하, 저를 제발 구해주세요!’ 그 생각을 곁에서 듣고 있던 이준훤은 눈빛이 싸늘해졌다. 곧 이준훤이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최옥선을 보며 입을 열었다. “숙원이 이리도 간곡하게 청탁하니 귀인 그대가 마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최옥선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전하... 신첩은 정말 목이 마르지 않습니다.” ‘전하께서 미치신 건가? 어찌하여 나더러 독차를 마시라 하시는 거지? 설마 전하께서 저 천한 것을 편애하시는 건가?’ “과인이 마시라 하지 않았습니까? 혹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겁니까?” 가라앉은 이준훤의 목소리에는 거스를 수 없는 왕의 위엄이 실렸다. 최옥선은 놀란 나머지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받았다. 어금니를 악물었고 눈에는 눈물마저 그렁그렁 맺혔다. 그 차를 보는 눈빛은 마치 독약을 보는 것처럼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었다. 나는 곁에 서서 그 모습을 보다가 친절하게 한마디를 보태 주기까지 했다. “귀인자가, 어서 드시옵소서. 식으면 차향이 다 달아납니다.” 최옥선은 벌벌 떨면서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더니 아주 조금 머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창백하던 낯빛이 곧바로 검붉게 변했다. 대뜸 찻잔을 내던진 최옥선은 두 손으로 자신의 목덜미와 얼굴을 사정없이 긁어 대면서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가렵다... 너무 가렵구나! 게 아무도 없느냐! 자객이 나를 해쳤다! 아이고, 가려워라!” 최옥선은 바닥에서 구르며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긁어 댔다. 그 바람에 가채마처 바닥에 떨어질 것만 같았다. 스스로 옷을 갈기갈기 찢었고, 입에서는 체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귀인의 체통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은 추한 꼴이었다. 둘러선 내관과 궁녀들이 놀라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이준훤은 싸늘한 눈으로 바닥을 구르는 최옥선을 보았다. 그 눈에는 역겨움이 가득했다. 그러다 곧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귀인이 체통을 잃고 왕실의 위엄을 해쳤으니, 끌어내어 석 달간 금족하게 하라. 과인의 윤허 없이는 누구도 문병을 가지 못한다!” “예!” 내관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마치 미친 사람을 끌어내듯 최옥선을 끌어냈다. 최옥선의 퇴장과 함께 귓가의 날카로운 울음도 멈췄다. 이준훤은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면서 나를 압박해왔고, 검은 눈에는 의심과 경계가 가득했다. 허나 그의 머릿속에서 미쳐 날뛰는 생각들이 이미 이준훤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들려주고 있었다. ‘숙원, 숙원에게는 분명 뭔가 있어. 방금 그 말은 명백히 귀인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게 분명해! 대체 어떻게 차에 약이 든 걸 어찌 알았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니 제발 속으로 조금만 생각해 보거라!’ ‘과인에게 그 비밀을 들려다오!’ 나는 눈앞에서 화병이 날 지경인 왕을 바라보며 서두르지 않고 몸을 굽혔다. “전하, 바람이 셉니다. 그 무성한 머리카락이 흐트러지지 않게 조심 하시옵소서. 신첩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치맛자락을 툭툭 턴 뒤, 놀라서 굳은 궁인들의 눈길 속에서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 이준훤은 그 자리에 선 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또 다시 그 머리카락 얘기가 나오자, 준수한 얼굴은 또다시 가마솥 밑바닥처럼 시커멓게 변했다. 제3화 강녕전 안에는 용연향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이준훤은 상 뒤에 앉아서 상소를 읽고 있었다. 그러나 한나절이 되도록 한 장도 넘기지 못했다.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은 이미 풍물놀이를 하는 것처럼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숙원은 대체 뭐하는 사람인 거지? 숙의도 자빠지고 귀인도 늘어졌는데, 정작 숙원의 속마음을 알아낼 길이 없네.’ ‘설마 몸에 무슨 부적이라도 지닌 건가? 오늘은 확실하게 숙원의 저 가면을 벗겨내고야 말 테야.’ 나는 얌전히 서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준훤이 살피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숙원.” 이준훤이 마침내 상소를 내려놓았다. 반듯한 목소리에는 기쁨도 화도 실려 있지 않았다. “숙원은 오늘 귀인이 화원에서 중독된 일을 수상하다고 여깁니까?” 이준훤은 떠보면서 속으로는 차갑게 웃고 있었다. ‘흥, 내가 말하지 않았나? 귀인이 스스로 가져온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가루라고. 지금 일부러 떠보면서 숙원이 당황하는지 한번 봐야겠어!’ ‘조금이라도 켕기는 기색을 보이면, 곧바로 의금부의 옥에 처넣을 것이야!’ 그러나 나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전하께 아룁니다. 신첩은 조금도 수상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귀인자가께서는 자신이 판 무덤에 스스로 뛰어든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본인 탓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당황했는지 이준훤은 침을 삼키다 사레가 들릴 뻔했다. 그 준수한 얼굴은 먹빛 구름처럼 어두워지면서, 마음속의 소리는 한층 더 시끄럽게 들려왔다. ‘숙원이 아예 대놓고 인정했네. 아니야, 내게 증좌가 없음을 확신하는 게야! ‘방자하다, 실로 방자하구나! 내가 이리 오래 살면서 그 어느 후궁도 감히 내 앞에서 이토록 당당하게 구는 걸 본 적이 없어!’ “숙원은 참으로 거침없이 말하는구려.” 곧 이준훤은 이를 악물더니 곁에 있던 이 상선에게 눈짓을 보냈다. “상선, 과인이 어제 새로 얻은 그 동해 진주를 가져와서 숙원에게 하사하도록 하라.”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상선이 정교한 자단목 함을 받쳐 들고 왔다. 상자를 열어 보니, 그 안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굵고 둥근 최상급 진주가 15알 들어 있었다. “이 동해 진주는 온 나라에 이 한 상자뿐이라 대비전에도 없는 물건입니다.” 턱을 살짝 치켜든 이준훤의 말투에는 왕 특유의 오만함이 실렸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흥, 이런 패물을 마다할 여인은 없지!’ ‘숙원이 마음이 동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아!’ ‘손을 뻗어 받기만 해도 속으로 반드시 우쭐거릴 터이니, 그럼 그때 그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어서, 어서 말하라고. 짐에게 진짜 마음의 소리를 들려달라 말이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그 진주함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이준훤은 순간 숨을 멈추면서 저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얼굴에는 내 꼬리를 잡을 수 있다는 흥분으로 가득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진주를 집으려고 손을 뻗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자를 이 상선의 품으로 도로 밀어 넣었다. “전하, 신첩은 이토록 귀한 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의연한 표정으로 이준훤을 바라보자 왕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어찌하여 받지 않는 겁니까? 혹시 적다고 여기는 겁니까?” ‘어찌 된 일이지! 숙원이 받지 않겠다니! 천하에 패물을 마다하는 여인이 다 있단 말인가? 이상해, 이는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해!’ 크게 충격을 받은 이준훤의 꼴을 보며 나는 살며시 웃었다. “전하, 이렇게 큰 진주를 비녀로 만들어 머리에 꽂으면 무거워 목이 눌릴 뿐 아니라, 평소 잠자리에서 몸을 뒤척일 때도 머리를 찌르기 쉽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첩이 보기에는, 전하께서 요사이 밤늦도록 상소를 결재하시느라 눈이 다소 풀리신 것 같습니다.” “이 동해 진주를 갈아 진주 가루로 만들어 전하의 용안에 붙이시면 부기가 빠질 것입니다. 용안이 상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이준훤이 막 집어 들었던 붓이 그대로 상 위에 떨어졌다. 뭐 하나 자기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런 상황에 이준훤은 속이 뒤집혔다. ‘목이 눌린다고? 잠잘 때 머리를 찌를 거라고? 가만, 방금 뭐라 한 거지? 내 눈이 풀리고 얼굴이 부었다고?’ ‘날마다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 분명 풍채가 늠름하고 기상이 대단한데, 감히 내 얼굴에 흠을 잡는단 말이야?’ 이준훤은 크게 얻어맞은 듯 저도 모르게 자신의 옆얼굴을 만졌다. 그리고 표정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 말에 화병이 날 지경인 왕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상 옆까지 다가갔다. 곧 상을 짚고 살짝 허리를 굽히면서 이준훤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원래 시끄럽고 미쳐 날뛰던 마음의 소리가 온통 쿵쾅대는 심장소리로 변했다. 왕은 당황한 티가 역력했다. ‘지... 지금 숙원이 뭘 하려는 거지? 짐에게 이토록 가까이 오다니! 대담하군, 숙원, 실로 너무나 대담해!’ ‘나를 홀리려는 건가? 아니야, 어찌 마음의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는 거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전하, 그만 짐작하시옵소서.” 나는 우리 둘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말했다. “신첩은 속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첩은 그저 전하께서 오늘 밤 더 쉬지 않으시면 얼굴이 붓는 것은 물론이고, 그 무성한 머리카락마저 지키기 어려우시겠구나 생각했을 뿐입니다.” 이준훤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웃음이 가득 담긴 내 눈을 응시했다. 낯빛이 종잇장처럼 하얘졌다가 이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천천히 제자리로 물러나서 몸을 굽혔다. “전하,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신첩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내가 전각을 나설 때야 이준훤이 목 끝까지 차오르던 말을 겨우 입 밖으로 뱉었다. “숙원... 당장 처소로 돌아가 자숙하세요! 과인은 사흘 안에는 숙원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치맛자락을 툭툭 털면서 여태껏 느껴본 적이 없는 쾌감이 온몸을 감쌌다. ‘전하, 신첩을 떠보시겠다고요? 그러시기엔 아직 너무 이르십니다. 제4화 대비마마의 환갑잔치가 열리는 날. 궁에는 노랫가락과 춤사위가 넘쳐 났다. 대전 한가운데에서는 무희들이 허리를 하늘하늘 놀렸고, 앞줄에 앉은 종친들과 높은 관직에 있는 신하들은 서로 술잔을 주고받았다. 겉으로는 태평성대를 누리는 왕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금족이 갓 풀린 처지라는 꼬리표를 달고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앉게 되었다. 윗자리에서는 붉은색 만수 무늬 옷을 입은 대비가 자애롭게 곁에 앉은 중전의 손을 잡으면서 안부를 묻고 있었다. 허나 내가 그 둘을 보는 순간, 두 여인의 살벌한 기싸움이 가득한 마음의 소리가 귀가 따갑게 들려왔다. 대비는 속으로 중전을 욕하기 시작했다. ‘저 위선적인 독한 년 같으니.’ ‘날마다 내 앞에서 효심 깊은 사람인 양 굴면서, 내 궁의 씀씀이에는 온갖 핑계를 대며 인색하게 굴지!’ ‘생선 가시나 목에 걸려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중전의 저 낯짝은 어찌 저리 두껍지? 변방 장수들의 방패로 만들어 줘도 끄떡이 없겠네!’ 중전 또한 만만치 않았다. ‘늙어 죽지도 않는 할망구 같으니라고. 예순이나 먹었으면 이제 내명부의 권력을 좀 내려놓을 것이지, 대체 언제까지 뒷방에서 그 권력을 틀어쥐고 있을 셈이지?’ ‘오늘 밤 환갑잔치에 들어간 돈만 해도 중궁전의 반년치 녹봉을 탈탈 털어 넣은 셈이니, 속이 쓰려 죽겠네!’ ‘오늘 밤 배탈이나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으면 좋겠어!’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머금던 나는, 그 마음의 소리를 듣자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참으로 볼만하네. 겉으로는 손을 맞잡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고부간의 정이 깊은 척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이미 서로를 관짝에다 몇 번씩이나 처넣고 있으니.’ 바로 그때 용상에 앉아 있던 이준훤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곧이어 왕의 마음의 소리도 나에게 들리기 시작했다. ‘숙원! 숙원은 어떻게 다과나 먹고 있을 마음이 드는 것이지?’ ‘이 대전에 있는 위선적인 인간들이 속으로 욕을 퍼붓고 있어서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어찌 저리 천하 태평할 수가 있지?’ ‘숙원이 있는 곳만 조용하고 고요하네.’ ‘어서 듣기 좋은 말 몇 마디라도 생각해서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듣고 더러워진 내 귀라도 씻게 말이야.’ 나는 눈을 흘기면서 손에 든 녹두로 만든 다과를 계속 베어 물었다. ‘꽁으로 내 속마음을 얻어 가시겠다? 꿈도 야무지네.’ “전하, 신첩이 보기에 오늘 각 댁의 규수들이 놀라운 재주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한번 무대에 올려서 대비마마의 흥을 돋워 드림이 어떠신지요?” 중전이 갑자기 대비의 손을 놓더니 단정하고 우아한 자태로 이준훤에게 청했다. 그러나 중전은 득의양양해서 궁시렁거리기 시작했다. ‘흥, 내가 진작에 다 마련해 두었지. 조금 있다가 내 친정의 조카딸을 올려서 춤을 추게 하면, 그 아이의 자태에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홀리겠지.’ ‘전하께서는 필시 대비마마의 체면을 고려해서 그 아이를 궁에 들이실 터, 그러면 내명부에 내 편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지!’ 이준훤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대비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중전의 그 제안이 참으로 좋습니다. 이 몸도 요즘 젊은 처자들이 어떤 재주를 지녔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허나 대비마마의 속은 싸늘한 비웃음으로 가득했다. ‘흥! 원숭이처럼 생긴 조카딸을 내명부에 밀어 넣겠다고? 꿈도 참 야무지지!’ ‘내가 시중이나 드는 내관을 마음에 품을지언정 중전의 집안 사람을 내명부에 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야!’ 이준훤은 용상에 앉아 어머니와 중전이 머릿속으로 기싸움하는 것을 듣더니 관자놀이에 핏대가 서기 시작했다. 깊이 숨을 들이마신 왕은 갑자기 손을 들어 구석의 나를 가리켰다. 왕의 목소리는 맑고 서늘해 위엄이 가득 있어 보였다. “대비마마께서 즐거워하시니 숙원이 먼저 물꼬를 트는 게 어떻습니까? 숙원, 그대는 대비마마께 뭘 보여드릴 것입니까?” 한순간에 온 자리의 눈길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중전의 안색이 조금 변하더니 속으로는 한바탕 저주를 퍼부었다. ‘전하께서 어찌 갑자기 저 방정맞은 것을 지목하시는 거지?’ ‘저것이 말 한마디로 빈을 숙의로 강등되게 만들고, 귀인을 원숭이처럼 만들어서 엄청난 모멸감을 느끼게 했잖아.’ ‘오늘은 절대 내 일을 그르치지 말아야 할 텐데!’ 마지막 녹두 다과를 삼킨 나는 손에 묻은 부스러기를 툭툭 털어 낸 뒤, 대전 한가운데로 하늘하늘 걸어 나가서 무릎을 꿇었다. “전하와 대비마마께 아룁니다. 신첩은 재주가 없어서 그런 속된 가무로 즐겁게 해드리지는 못할 것 같아 미처 준비하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소첩이 요사이 골상으로 관상을 보는 민간의 기이한 술법을 익혔사온데, 사람 마음의 소리와 운세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대비마마의 탄일 연회이기도 하니 신첩이 이 술법을 써서 대비마마와 중전마마의 고부간 애정 정도를 헤아려 볼까 합니다.” 이 말이 나오자 대비와 중전의 몸이 동시에 뻣뻣하게 굳었다. 이준훤은 두 눈을 번쩍 빛내면서 그대로 자리에서 몸을 곧추세웠다. 화병이 날 지경이던 왕의 마음의 소리가 하늘을 뚫고 터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옳거니! 숙원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손을 쓰려는 것인가? 골상으로 관상을 본다고?’ ‘내가 보기엔 그저 두 사람의 실제 생각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어서 빨리 공개하라! 오늘은 내가 뒤를 봐줄 터이니, 날마다 과인의 귓가에서 조잘대는 저 두 여인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란 말이다!’ “당치도 않습니다! 숙원, 그런 요망한 말로 왕실의 법도를 어지럽히려고 작정을 한 겁니까!” 중전이 탁자를 치며 일어섰지만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속으로 미친 듯이 불안함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어찌 된 일이지? 숙원이 정말 뭔가를 알아차린 것인가? 내가 속으로 저 노파가 어서 죽기를 저주한 것을 공개한다면 내 중전 자리는 어찌 되는 거지?’ 대비도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기가 어려워졌다. 표정은 변함이 없었으나 불안하기는 중전과 마찬가지였다. ‘숙원, 아주 요사스럽구나.’ ‘만에 하나 정말 재주가 있어서, 내가 중전의 얼굴이 두껍다고 흠을 잡고 욕을 한 것을 여기서 발설한다면 왕실에서의 내 위엄은 그야말로 웃음거리가 되겠지.’ 나는 대전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내명부의 두 수장을 보며 입꼬리를 살며시 끌어올렸다. “전하, 중전마마께서 다소 긴장하신 듯합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왕을 쳐다봤다. 어서 보자면서 서두르라는 왕의 흥분한 눈길을 마주하였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신첩의 이 술법은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고 오직 진심이 어떤 건지만 알아낼 수 있습니다.” “대비마마와 중전마마께서 떳떳하시고 서로에게 참된 축원만 품고 계신다면, 신첩 또한 자연히 고부간의 화목한 앞날을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허나 만일...” 나는 일부러 말끝을 길게 늘이며 눈길로 중전의 얼굴을 훑었다. 중전의 손바닥은 온통 식은땀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내명부의 후궁들과 대신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너무 켕기는 티를 낼 수도 없어서, 이를 악물고 속으로 삼키며 억지로 자리에 도로 앉았다. “숙원은 참으로 대단한 재주를 가졌나 봅니다.” 깊이 숨을 들이마신 대비가 억지로 위엄을 차리면서 입을 열었다. “숙원이 그토록 신통방통한 술법을 할 줄 안다고 말하니, 이 몸도 오늘 숙원이 무엇을 보아 내는지 한번 보아야겠습니다.” 그러나 대비는 속으로 나를 죽일 듯이 욕하기 시작했다. ‘천하의 나쁜 년. 감히 헛소리를 지껄여 나의 체면을 깎이게 한다면 오늘 밤 사약을 내릴 것이야!’ 나는 몸을 일으켜 우아하게 옷자락의 먼지를 털고 위에 앉아 있는 대비와 중전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그럼 외람되지만 신첩이 두 분 마마의 마음이 어떤지 한번 보겠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이준훤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눈에는 감추지 못한 장난기와 흥분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무성한 검은 머리카락마저 흥분한 숨결에 살짝 흔들리는 것 같았다. ‘숙원, 궁에서 저들이 하는 거짓말은 지겹도록 들었어.’ ‘오늘 이 위선자들의 진짜 모습을 까발리는 걸 윤허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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